할머니 밭과 배나무

주사라 2010. 4. 15. 23:38

 

 

 

 

     

                          할머니 밭과 배나무 

            

                                                                       명숙

 

     어제는 때마침 비가 내렸으니 오늘은 텃밭을 일궈야겠다. 손바닥만한 텃밭이지만

   여기는 오이와 호박을, 저기는 고추를 심고, 이곳은 깻잎과 쑥갓, 상추를, ! 저기

   는 토마토를 심자, 도라지 심은 곳은 흙을 토닥거려 주고 더덕은 작년보다 좀 나아지

   려나? 부추도 흙을 갈아주어야 되겠다며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3월엔

   무슨 연중행사처럼 눈이 와서는 새싹과 꽃들이 얼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올해는 비

   닐을 미리 씌워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부엌 창 밖을 내다보던 남

   편이 함성을 지른다. 스가랴야, 함박눈이 온다. 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커튼

   을 열어 젖히고 창 밖을 내다본다. -아 매우 아름답다. 아니 하늘 창이 열렸나?

   아니면 눈꽃 여왕이 무슨 급한 전령이라도 있는가?  

     마치 튤립 꽃 모양 같기도 한 아름다운 눈꽃들이 마냥 쏟아져 내리고 있다.

 

     아침 8시부터 내린 눈이 한 시간 반 동안 쌓인 눈을 재어 보니 3인치다.  

   직장에 근무 중인 딸에게 전화하니 그곳 벨뷰 에는 눈이 오지 않았는지

  그래요?”

   하고 놀란다. 창 밖을 내다보니 온통 하얀 천지다. 창 밖의 배나무를 바라보니

   나오려던 새싹이 어느 사이에 쌓여가는 눈과 차라리 동행을 하려는 듯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배나무야, 작년에는 내가 너무 미안했어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올해는 온 정성을

     쏟아서 너를 지켜 줄 것이야, 올해도 열매를 많이 맺어라너를 바라보는 것으로 낙을

     삼았던 시간을 너는 알고 있니? 이제도 내게 그런 기쁨을 선사해줄 것이지?  

     나는 배나무에다 온 정성을 다해서 음식 국물은 무엇이든지, 열심히 거름삼아 주었다.

     그때 문인지 우리 집 배가 아주 달고 물이 많다.

     작년에는 한참 뜨거운 8월에 코로라도 사는 큰 딸네 집을 다니러 갔는데 제일

     걱정이 물을 안주면 금방 타 죽을 야채와 배나무다. 5살과 3배기 손자들한테 할머

     니 밭에 아침저녁으로 물을 꼭 주어야 해 그래서 이만큼 크면 할머니가 상 줄 거야

     하고 손가락 걸고는 떠났는데, 전화 걸면 제가 먼저 할머니 어제도 오늘도 물 많이

     주었어, 그래 아이 예뻐라, 머니 이만큼 컸어, 말하는 목소리가 재미있고 신이 나

     는 목소리다. 저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까? 저희가 물을 준 텃밭과 배나무는  

     이 말썽꾸러기들도 절대 건드리지를 않고 많이 달려서 커가는 배 열매를 열심히 관찰

     을 하면서 할머니 밭이야, 하면서 아껴준다.

       남편은 내게 열매가 너무 많으면 크지를 못해, 좀 따주어야 해하면서도 절대 안 건

     드린다. 내가 너무 애지중지하기에! 마치 무슨 포도 송이라도 달리듯이 주렁주렁 달

     렸다. 세어보니 한 나무에서 48개가량 됨직하다.

       나는 남편에게 절대로 따지 마세요,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얼마나 보기 좋아

    요? 주렁주렁 달린 모습 보기만 해도 흐뭇해요!

      추석이 지나도록 주먹만큼이나 컸을까? 11월 초까지는 두고 보아야지! 그러나 어느

      날인가 밤사이에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밖을 내다 보는 내 시야가 무언

      가 허전하다.  설마, 하면서 얼른 밖에 나가서 확인을 해보니 배가 5개만 남고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아이들이 건드렸으면 바닥에 흔적이라도 있을

      텐데, 전혀 흔적이 없다. 어떤 가지는 아예 가지째 꺾인 것도 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여보게 배나무에 배가 없어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알아? 대뜸

      들이대니 기가 막히다 는 듯이 사위가 뛰어나온다.

      그 바람에 온 식구가 다 나와서는 놀라는 눈치는 마찬가지다.

       남편은, 그만해 누군가 우리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을 테지, 잊어 버려,

    하지만 잠든 사이에 남의 집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심각한 일 아니냐고 말하

    면서 난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것을 다 따가도록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잤다니,

    무서운 생각이 든다. 새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평안이 살 수가 있다는 것을 절감

    한다. 순간적으로 욕이 나오려는 것을 누르고는 주님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사

    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쓰린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를 않는다. 그때 그 시간을 회상하면서 밖을

    내다보니 눈이 그치려나 보다. 눈꽃 송이가 그치려는데, 남편은 두 손자들과 눈싸움

    을 하면서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손자 덕분에 깻잎 농사는 대풍이어서 된장에다가도 박아 넣고, 양념장에 담아

    놓은 것을 지금도 맛있게 잘 먹고 있다. 잃은 배 대신 잘 자라준 깻잎이 새삼 고

    맙다. 지난날 생각이 나서 혼자서 빙긋이 웃어본다. 올해에도 씨를 뿌리고 유기농

    야채를 즐겨야지! 울타리 문은 자물쇠를 단단히 잠그도록 해야 해야겠다. 그보다도

    더 귀한 것은 내 소중한 보배인 님의 사랑을 잃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되겠다.

                           (3/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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