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국을 끓이면서
윤(김)명숙
약간 쌀쌀하지만, 배나무에는 꽃봉오리가 터질 것 같다. 꽃샘추위라고 말하는 걸 보면
겨울도 가는 세월 아쉬워하는 모양이다. 모처럼 텃밭도 손질하고 파뿌리를 심고, 씨 뿌 릴 준비를 하느라 흙을 고르게 손질하는데 쑥이 듬성듬성 보인다.
봄이 되니 입맛도 변동이 온다. 오이지를 씻어 햇빛에다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모습처
럼 꾸덕꾸덕 말려서 담아둔 된장과 고추장 단지도 모처럼 좋은 날씨에 따뜻한 햇볕 좀
쏘이라고 뚜껑을 열어주었다.
비가 자주 오는 탓도 있지만, 잿빛 하늘에 볕 드는 날이 구경하기가 어려웠으니 얼마
나 몸살을 앓았을까? 된장 단지 윗부분이 희끄무레하게 더께가 생겼다. 이제는 햇빛을
마음껏 쏘이고 영양가 듬뿍 들은 맛있는 된장이 되라고 속삭여본다. 위에 끼어 있는
더께를 깨끗하게 걷어주고 속을 약간 헤집어 보니 샛노랗게 잘 익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고국의 여인들이 쑥을 뜯으며 까르르 웃어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곳에서 언니들과 함께 쑥을 뜯으며 냉이와 달래나물을 캤던 정겨움의 순간이 스크린
처럼 스쳐간다.
봄이면 쑥 된장국도 끓이고 쑥을 넣어 만든 버무리떡과 개떡은 기름이 반지르르 윤이
나면서 군침이 돌게 한다. 냉이도 나물이며 김치와 된장국, 달래도 잃어버린 입맛을 어
찌나 맛있게 돋워주는지! 봄맞이 반찬으로 춘곤증을 물리치는 데는 둘째 가라면 서럽다 할 것이다. 불현듯 어머니가 그립다.
내 어린 눈에 비치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떤 것이든 그 손에만 붙들리면 입에 착착
붙는 요리를 만든다. 한 가지의 재료를 가지고도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며 심지어는
준치국을 끓여서 다 먹고 남은 가시를 가지고 새 모형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지금도 쑥만 보면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개떡이 그리워진다.
시애틀에서도 사람들은 달래, 냉이, 쑥, 야생 시금치를 뜯어다 먹는다. 참 용케도 잘
찾아낸다. 시금치와 냉이를 뜯어서 몇 번은 맛있게 해먹었지만, 고향의 맛은 아니었다.
몇 해 전인가, 가게 일을 끝내고 대학가에 있는 호숫가를 산책하는데 커다란 나무 밑
에서 쑥이 자라는 것이 보였다. 아주 반가워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몇 뿌리를 캐었다.
사람들 보기에 좀 미안하긴 했지만!
질이 좋은 땅에 심어서 키우니 번식이 얼마나 잘되는지, 제 영토를 마구 넓혀 가면서
잔디밭까지 덤벼든다. 여러 집에 분양을 시키고도 많아서 쑥 국, 버무리떡, 개떡도 만
들어 먹었지만, 어머니의 손맛이 안 난다.
3 년 전에 그 쑥 몇 뿌리를 함께 가지고 새집으로 이사했다. 한쪽 구석에 심었는데
땅이 좋지 않아서일까? 인제야 겨우 한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양만큼 퍼졌다. 남편에게
고향의 봄이 우리 집에 왔다고 하니 “응?”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다.
쑥을 뜯어서 된장국을 끓였다. “여보 얼른 오세요. 오늘 반찬은
“고향의 봄 국”이예요. 따끈할 때 맛있게 드세요.”
남편은 “고향의 봄을 먹으니 맛있다” 라면서 웃는다.
어머니는 이미 하늘나라에 갔지만, 나의 삶 가운데서 항상 미소로 삶의 지혜를 가르
쳐 주신다. 쑥은 오월의 인진 쑥이 제일 좋으니 덖어서 말려두었다가 뜨겁게 끓인 물
에 차로 마시면 여자의 건강에 매우 좋다고,
오월이 가기 전에 차 재료도 만들고 쑥 인절미도 만들어 먹어야겠다. 그러 한 생각
이 나로 하여금 조금은 여인답게 해주며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한다. 행복은 멀리에 있
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무엇보다 가정 안에서부터 행복이 이
루어져야 하리라. 우리 가정 행복하게 살자고 마음으로 굳게 다짐해본다. {3/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