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仁塘/
텃밭과 배나무에 물을 주다 배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바라보며 날이 이리 더운데 얼마나 갈증이 심할까? 안타까운 마음에 물을 많이 줄 터이니 천천히 많이 마시고 열매가 아름답게 크고 맛있는 배가되어서 내 마음에 기쁨을 더해다오.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 스스로 깜짝 놀랐다.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열매를 많이 달린 것을 보니 더 마음이 가고 안쓰러워지면서 사랑을 한없이 주고 싶어지며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기대하게 되는데! 창조주의 마음은 어떠하시랴! 깨달음을 주시는,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놓았다고, 내 새울 것도 없지만, 앞으로 “해야 할”일을 생각하며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데 지혜가 부족할지라도 구하면 꾸짖지 아니하시고 넉넉하게 주시는 주님께 무릎 꿇고 겸손히 구하면 용납하시리라고 생각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어느 사이에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가며 산도 들도 채색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고 있다. 가을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도 주지만 풍요로움도 가져다 줄뿐 아니라, 외로움과 고독을 배우는 계절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살짝 젊음의 미소로 스치며 지나가기도 한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국의 아름다운 단풍잎과 은행잎들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환상적인 덕수궁 돌담길, 그 추억 속에는 항상 이십 대의 꿈 많던 시절의 모습이 미소를 지으며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어린 시절에는 왜 이리 세월이 더딜까? 빨리 어른이 되어서 자유롭게 살기를 얼마나 갈망했었는지.
구름 따라 바람 따라 강물이 흘러가듯이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가버리고 어느 사이에 숨길 수 없는 나그네 삶의 흔적들이 얼굴과 내 모습에 새겨져 있다. 석류 같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변해가는 모습이 마치 인생 여정의 끝자락에 서 있는 것 같다. 어쩜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들어 있는 저녁노을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사계절 중에 어느 계절이 좋으냐고 물으면 항상 대답은 꽃이 만발하게 피는 봄이 좋다고 했었다. 반면에 쓸쓸하고 추운 겨울은 싫어했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계절은 뒤바꾸기를 쉼 없이 한다. 세상만사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순응하면 편한 것을… “이제라도” 순종함으로 나를 다스려보자고 마음을 달래본다. 아무리 겨울이 싫어, 그냥 지나가라고 하지만 겨울 문턱에 서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겨울의 참된 의미와 아름다움을 어느 보석에 비교하리. 때로는 순결한 신부처럼 눈꽃으로 지은 옷자락 속에 숨어들기도 하지만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사랑하는 님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여인 같기도 하다. 겨울 나무는 모든 걸쳤던 옷들을 홀가분하게 벗어버린다. 매섭도록 내쳐대는 모진 바람에도 말없이 묵묵히 서 있는 나무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그래도 희망이 있기에, 빗물이 눈물이 되어 흐르지만 인내하며 기다린다. 인내를 잘해야만 받을 수 있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황홀함 그 자체임을 알기에!
“이제라도” 겨울나 무처럼 다 벗어버리자. 삶의 허영과 허욕을, 육에 속한 모든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듯 해야겠다. 비록 고목 같이 외롭고 쓸쓸해진다 해도, 구름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고 별이 구름 속에 숨어 고독할지라도, 비바람이 불어 제칠지라도, 비가 내린 후에 “맑은 하늘, 밝은 빛”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는 님 바라기 같이 꽃 구름을 타고 오실 님을 사모하며 바라보자. 때가 되면, 손잡고 인도해주실 그날이 오면, 말로다 형언치 못할 아름다운 “수정궁”에서 “빛난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오늘의 아픔도 괴로움도 웃음으로 날려 보내며 묵묵히 묵상하며 “님”바라기 모습 되어서 남은 삶을 소망으로 살아야 하리라 다짐을 해본다. (9/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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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출처: 미소짓는햇살 찬양의 쉼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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