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니
윤(김)명숙
시애틀 날씨가 서서히 우기가 시작되려나?
잿빛 하늘이 가라앉는 듯하면서 비가 내리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뒤뜰에 배나무를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서 탐스럽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봄에 처음 열매가 달렸을 때다. 이웃 친구분이 남편보고 열매를 솎아주어야 제대로 크고 상품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여러 해를 내 고집으로 솎아주지 못한 생각에 괜찮다고 말했단다. 보기에 좋아서 그대로 둔다고!
정말 그렇다. 별나게, 마치 포도송이처럼 달린 것이 예뻤다. 한송이라도 아까워서 따버리지 못하고 적으면 적은 대로 자라다가 저절로 떨어지는 놈은 떨어지더라도 그대로 두고 본다.
올해는 7월 한 달을 고국여행을 다녀왔다. 돌보아주는 손길의 사랑을 잃은 체 물을 제대로 얻어 먹지 못하고 불볕더위에 시달려서 아기 주먹 만큼도 크지 못했다. 애지중지 아껴보는 배나무가 공연히 가슴 시리도록 미안한 마음이다.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물을 주면서 잘 자라다오, 배야 배나무야! 고운 빛으로 맛있는 속살로 자라다오. 응
마치 애기에게 말하듯이 대화를 나눈다. 아침에는 과일즙 찌끼로, 저녁에는 야채 즙 찌끼로 또는 영지버섯 남은 물을, 때로는 먹고 남은 국물을 부어주면서 너도 먹어봐. 맛있게 먹고 어서 커야 한다. 나무도 생명이 있는지라 알아듣고 사랑을 부어 주는 것도 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배가 쏙쏙 자라는 것 같고 살결이 아주 곱다. 이웃친구의 말이다. 지나다니면서 보면 다른 집은 기후 관계 탓인지? 배가 많이 달리지도 않았고 크지도 못하는데 이 배는 어찌 이리 예쁘게 클까? 거 참 신기하다고 한다. 잘 자라고 있는 열매를 보면서 마치 다산한 집의 엄마가 된 듯하고 마음이 뿌듯하다. 순간 지난날이 생각난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이웃집에 화장품 장사 아주머니가 있는데 그분은 우리 집에 잘 들렀다. 우리 집에서 사람을 모아 주기도 하며 때로는 모델처럼 화장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매우 아픈데도 쉬지 못하고 나왔다고 탄식을 한다. 내 딴에는 위로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자식이 많아서 걱정이 들되시리라고, 그 말에 버럭 화를 내며 열 손가락을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는 일이라고, 물론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짚어볼 수 있는 것
같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장성했을까? 잘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속을 썩이는 아이도 있겠지, 아마도 그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사랑으로 잘 자라 낫겠지, 생각하고 싶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칠 남매 중의 아들이 하나뿐인 우리 집은 유난히 나를 사랑해주시는 아버지, 형제 중에 제일 약하고 못나서 염려가 되셨나 보다. 어떠한 형제보다 극진히 사랑해주시며, 막내아들을 업고 계시다가 내가 아버지 나 아파, 하면 그 귀한 막내 아들도 내려놓고 나를 업어주신다. 이처럼 그 화장품 장사 아주머니도 그 아픈 자식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나 보다. 나 역시 자식이 둘이 있지만 멀리서 홀로 애쓰며 살아가는 자식이 마음이 더 가고 아프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연약하여서 강하지 못한 탓일까? 나를 품으시고 사랑해주시는 그 사랑, 부르짖으면 내가 여기 있노라 하시며 응답 주시고 지켜주신다.
아마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더 품으며 사랑하나 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는 사회는 그래도 살아갈 만한 희망이 있지 않을 까? 내가 배나무에 온갖 사랑과 기도로 지켜보며 기다리듯이, 우리 어버이들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사랑과 기도로 애태우며 기다림도, 이 모든 사랑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가난하고 연약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며 희생하며 섬기는 삶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귀하고 값진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진실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가난한 자여 내게오라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고 하셨나 보다.
나도 이후로 부유한 자보다는 나처럼 가난하고 힘이 없는 연약한 사람을 섬기며 살아가리라 마음에 다짐해본다. {10/13/10}
사랑과 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