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
맷돌 윤(김)명숙
명절이 다가오면 맷돌과 함께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으르렁 드르륵 소리 내면서 어떤 거친 것이라도 잘 갈아 내놓다가도 드르륵 시끄럽게 어긋나면 다시 잘 맞춰서 콩을 갈아내는 맷돌처럼 얼굴도 닮았고 부부 싸움도 얼마나 시끄럽게 하는지 이웃이 다 알게 된다. 싸우면서 정이 더 깊어지는지 정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그리도 맷돌과 닮았을까 생각했다. 동네 분들은 얼굴이 얽어서 심술 많다며 욕을 했지만 내게는 정이 많고 좋은 아주머니였다는 기억이다. 추석이나 정월명절이 되면 꼭 떡과 녹두빈대떡, 수정과 등등, 명절 음식을 차릴 때면 맷돌에다 녹두를 보통 한 말 이상을 갈아서 빈대떡을 부친다. 그런 힘든 날이면 꼭 와서 도와주시는 분이었다. 힘든 일들을 거뜬히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를 관절이 약했던 어머니는 무척 고마워했다. 내가 아주머니한테 놀러 가면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겨 양 갈래로 땋아서 빨간 댕기로 잡아 매주며 귀도 후벼주곤 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당시에는 왜 그리 곰보가 많았는지, 지금은 믹서기로 대신하는 시대가 되어서일까? 얼굴도 성형을 해서 모두가 꽃보다 아름답다.
나이가 들면 서부턴 녹두 한 말을 언니들하고 마주 잡고 돌리고는 했다. 빈대떡 부치면서 언니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그 아주머니가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형제들이 다 모여서 웃음보가 터지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왜 그리 힘들게 녹두를 꼭 갈아야 만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맷돌에다 팥이나 콩을 갈아서 밥에 도 두어 먹기도 하지만 물에 불린 콩을 곱게 갈아서 콩 국수나 콩 비지, 두부를 만들기도 하며 콩 비지는 부드러운 배추를 삶아 콩 비지찌개를 해서 양념간장을 맛있게 만들어 섞어 먹던 그 맛은 일품이다. 또는 물에 불린 녹두를 갈아서 청포 묵을 만들고 녹두 물은 묵 물이 라고 해서 묵 물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지금은 잊혀 가는 가난한 시절에 맛있게 먹던 음식 들이다.
언니들이 장성해서 집을 떠나고 나니 맷돌질은 내 차지가 되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손잡이를 빼서 없애 버렸던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처구니 없어하시 면서 손잡이를 또 만들어 왔다. 그런데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손잡이의 이름이 어처구니 란다. 문명이 발달한 지금에 와서는 힘든 맷돌질은 시골에서나 맥을 이어가는 고유 문화가 되었 고 믹서기가 대신 맷돌의 역할을 한다. 곱게 갈아먹는 음식 탓으로 고운 음식만 먹고 즉석에 서 할 수 있는 음식만 즐겨 먹어서일까? 사람들의 몸엔 웬 문화병이 그리도 많을까? 언제인 가 음식으로 치유한다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어느 박사님이 원시인 시대로 돌아가서 거친 음식을 먹어야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 말에 공감이 가는 것은 육, 칠십 년대에 어디 지금처 럼 먹었을까? 하지만, 병이 그리 많지는 않고 건강했었던 것 같은 기억이다.
맷돌에 갈아서 먹는 음식은 거칠기도 하지만 친 환경적인, 오염이 없는 음식이라 예찬하 게 된다. 어떤 것을 넣어주든지 아무거나 탈이 없이 잘 갈아서 내놓는 맷돌이 시대가 흐름 에 따라서 시골에서만 쓰고 도시에서는 잊혀 가고 있는 것같다. 명절만 되면 어머니와 함께 어처구니를 마주 잡고 맷돌질을 했던 수년의 정겨운 세월이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올라가듯이 그리움만 새록새록 살아난다.
맷돌질을 하면서 힘들다고 짜증을 내는 철없는 소녀였던 내가 어느 사이에 황혼의 언덕 에서 이제는 몸의 일부요 중요한 맷돌을 잃어버리고 현대인의 부분맷돌을 쓰면서 살아가 자니 아무거나 시원하게 잘 갈아서 소화시키는 맷돌이 어린 시절의 정겨운 추억과 함께 더욱 그리워진다. (8/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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