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윤(김)명숙
붉게 타오르는 여명이 아름답다. 여느 아침 해와 다르지 않건만 새해 흐르는 강물처럼 되
돌릴 수 없는 세월 속에 밀려 어느새 황혼 길에선 나그네의 삶, 세찬 물결처럼 살아온 지난
날들을 멈춰보며 감회에 젖는다. 미국도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 때문인지 연말 기분은 핼로
윈(Halloween)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아이들의 명절처럼 변해버린 10월 31일 밤은 원래
모든 성인의 날(전야제)로 지키던 축제일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이들의 악의 없는 장난과
과자를 얻는 날이 되었지만, 악귀를 쫓는다는 전설을 따라 밤거리를 몰려다니는 아이들은
귀신 차림이나 마귀가 면을 쓰고 호박 등불을 손에 들고 집집이 돌며 “트릭 오어 트랫
(Trick or Treat! 장난을 칠까요? 아니면 과자를 줄래요.”) 외치고 다닌다. 대부분 집은
아이들을 환영하는 뜻으로 과자를 준비해 놓고 유리 창가에 속을 도려낸 커다란 호박 안에
촛불을 켠 등(Jack O’ Lantern)을 놓는다. 핼로윈 밤에 얻어온 쇼핑백에 그득한 과자나 사
탕은 몇 달 동안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된다. 마치 한국의 어린이날처럼 아이들이 기다리는
날이다.
그러나 지금은 위험한 일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부모가 함께 이웃 주변만 다니고 교인들은
교회에서 지내기도 한다. 우리 손자들도 영국전통 의상과 천사의 옷을 입고 핼로윈데이를
교회에 가서 놀다 왔으니 아마도 밤거리에 나가서 집집의 초인종을 눌러 과자를 얻어오는
풍습은 차츰 사라질 것 같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세월은 언제 다시 오려는지.
핼로윈이 남긴 호박 등불을 치우고 숨을 돌리면 어느새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추수감사
절과 성탄절은 미국의 가장 큰 두 명절이다.
“엄마, 이번 추수감사절에(Thanks giving)도 칠면조(Turduken)와 햄(Hem) 야채를 준
비할게요. 엄마가 대접하고 싶은 친구나 이웃을 부르세요.”
타국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속에서 딸들이 속 깊고 예쁘게 성장한 것을 보면 마냥 행
복해진다. 추수감사절엔 대부분 가족이 없어 쓸쓸한 이웃을 초대해서 함께 지낸다. 한인단
체들도 여기저기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나눔의 행사를 한다. 항상 그리하면 좋겠다.
감사절은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로 연휴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모이는 여행이 많아서 이 또
한 한국의 고향 찾는 추석행렬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공항은 북새통이다. 출입구가 대 만원
이어서 검사받는 시간이 길어지고 비행기 연 발착 등의 사례가 자주 벌어진다. 또한, 고속도
로도 체증이 심하다.
많은 이민자는 자신들의 명절을 즐기지만, 우리 가족은 고구마 맛 탕과 치즈케이크, 호박
케이크, 칠면조구이, 칠면조 속(스터핑)은 찹쌀에 여러 재료를 넣어 만들며 김치도 빠짐없이
챙긴다. 딸과 사위도 거드니 푸짐한 음식상은 합작이 된다.
감사절(Thanks giving)이 지나면 곧 크리스마스와 새해맞이로 부산해진다. 감사절을 전
후로 쇼핑센터 마다 대폭 할인판매를 하는데 가족 간 이웃 간에 선물을 나누기 위한 준비로
바쁘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의 재미는 바로 다음날에 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할인판매 행
사로 백화점 앞엔 밤새 사람들이 진을 치고 온종일 세일 상품을 사러 다니느라 발걸음이 바
쁘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곧바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거실에는 미리 크리스마스트리를
해놓고 선물을 쌓아놓으며 아이들은 벽난로에 양말을 걸어놓고 싼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동화세계의 꿈을 갖기도 한다. 도시의 광장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거대하게 꾸미고는 행진
을 하며 크리스마스 캐럴 과 함께 찬란한 불빛으로 밤하늘을 장식하고 거리는 인파들로 출
렁인다.
이곳에도 시애틀센터,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아름답
게 장식하지만 떠들썩한 행사는 폭동 이후 대체로 자제를 하고 있다. 동네 집 뜰에는 오색
등이 깜빡이며 아기 예수 탄생 기념물로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하며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
하는 예배로 밤을 지새우고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가족들이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혹은 멀리에 사는 가족들이 자동차로 이 삼 일을 드라이브를 즐기
면서 부모님 집으로 모여 행복한 시간을 갖고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도 한다. 아마도 9.11테
러사건 이후 가족 간의 사랑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1월1일, “해피 뉴 이얼(Happy New Year)” 로 인사를 나누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도
하며 가족들이 둘러앉아 떡 만둣국과 명절요리를 준비해 먹으면서 윷놀이와 게임을 즐기며
가족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미국에 산다고 달라질 바가 없다.
이곳 미국인들은 새해 첫날을 활기찬 젊은이들의 훗볼(미식축구)로 시작하는 것이 전통
이라 한다. 각주마다 불꽃놀이를 즐기며 행진을 하지만 역시 테러사건 이후로는 간소화하
게 지내며 가정에서 새해 식탁을 나눈다.
국가 공무원들은 새해의 특별한 행사는 없고 1월2일부터 출근하면 보통 때와 똑같이 정
상 업무에 들어간다. 여기는 회계연도가 7월에 있기에 새해에 특별 행사는 없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인들의 세모는 조용하고 살뜰하다. 그들의 근면하고 검소한 삶의 모습이 아닐
까? 미국인들의 근검절약 정신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웃집 금발 아가씨는 결혼식
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할머니가 입었던 것이라며 자랑을 했다. 어느 할머니는 금혼식에 입
을 웨딩드레스가 결혼식에 입었던 것이라며 치수를 늘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일
까? 우리 딸들도 웨딩드레스를 잘 보관하고 있다.
지난해는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일이 이루어졌다. 실버대학의 문예창작교실에서 배운 결
실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이 앞선다. 신년에는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서 좋은 글을 쓰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겠다. 남편과 나의 한국 방문을 기다리는 친척들이
그립다. 칠 남매가 함께 고국 관광을 즐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니 생각만으로도 나의 새
해는 감사와 축복이 넘칠 것 같다. 11/25/07/